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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하리하우스 1973년 건축 당시의 전경

1973년... 새마을 운동이 절정에 이르고 수출 100억불을 외치던 시절에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리에 양조장 건물이 신축 되었습니다. 그 시절 고향 떠난 누나와 형아들이 서울 구로공단과 울산공단에서 티셔츠도 만들고 유조선도 만들면서 오로지 고향땅 부모님과 조국 근대화의 희망찬 미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모두가 열심히 일하던 시대 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박정희 군사독재 정부의 장기집권 시도가 진행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절대 자유와 인권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앞 세운 유신헌법이라는 정치적 틀속에서 독재에 짖눌리고 살았던 암울한 시대가 1970년대 입니다. 그 때 하리하우스도 태어 났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2007년 4월에 우리시대의 목수들 손으로 각종 첨단 건축공구와 건축자재를 사용하여 하리하우스를 리모델링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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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2007년 3월 하리하우스 측면 전경

2006년 10월에 하리하우스를 건축주가 매입했다. 머 언 훗날 은퇴 후 주말농장이나 그 이전에라도 여건이 되면 주말농장에서 이루어지는 가정교육이 이웃으로 이어지는 작은 학교에 대한 건축주의 꿈이 깃든 집이 하리하우스(www.harihouse.co.kr) 이다. 은행나무와 호두나무 그리고 70년대 건축이 보여주는 시대성이 묘한 대조감과 함께 따뜻한 남쪽을 향해 자리 잡은 하리하우스는 좋은 집이었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후 하리하우스는 리모델링에 들어가서 현재의 사진에서 굴뚝과 창고 등은 이제는 추억의 영상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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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리모델링 중인 하리하우스 5월의 풍경

원래 방수만 하고 살면서 적당히 손보고 살자고 마음먹었던 집은 옥상의 데크 공사와 방수공사로 이어졌다. 그 후 다시 공사는 커졌다. 시멘트사이딩 공사와 창문공사 구조물 철거 등으로 이어지는 시간들 속에 모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작업을 하였고, 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하리하우스가 새집처럼 되는 그 풍경보다는 우리시대의 목수들과의 만남이 더 즐거운지도 모르겠다. 방수와 보일러 시공... 나머지는 살면서 에어콤프레서 구입하고 타카 사서 시간 나는 대로 함께 꾸며가자는 계획은 우리들의 손을 떠나 건축기술인들의 손으로 넘어가 있었다. 역시 건축전문가들의 작업은 달랐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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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07년 5월 28일 하리하우스 전경
 

참 많이도 변했다. 처마지붕이 생겼으며 옥상에 데크 난간이 시공되었다. 건물의 외벽은 시멘트사이딩으로 마감되었고 나무 창문은 PVC창문으로 교체되었다. 합판으로 되어있던 문들도 외부는 모두 ABS수지의 문으로 교체되어 시공되었다. 아쉽게도 건축주가 비용 상의 문제로 2층 옥상의 바닥재는 방부목 마루를 깔지 못하고 난간만 하게 되었다. 훗날을 기약하며... 그래도 1층의 처마 지붕가 2층의 방부목 난간으로 이어지는 건축물의 비율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동서양의 만남과 같은 개성 있고 튼튼한 하리하우스로 리모델링되어 가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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