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단양 복층 전원주택 소구리하우스 OSB보드 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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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스틸하우스 신축공사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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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耕耘機) 팔자 개 팔자
밭갈 경, 김맬 운, 즉 논밭을 갈아 일구는 기계가 경운기다.
소가 할 일을 대신하니 현대판 쇠소라 해도 마땅하다.
힘이 장사인데다 기름만 넣어주면 군말 없이 제 할일을 하고야
만다.
요긴하게 썼으면 그만큼 대접을 해줘야 마땅할 텐데, 흔해 빠진
탓인 지 낡고 병든 경운기는 곳곳에 방치되고 있다.
월촌 고개를 지나 개미실 못 옆길엔 대가리는 처박은 체 몸체를
지게작대기로 고여 높여 뻘쭘하게 서 있는 경운기가 있다.
해체당한 엔진 쇠바퀴가 엇비슷하게 놓여있어 강시처럼도 보이는
지라 무심코 지나다가는 옴마야 ! 놀래기도 한다.
한 때는 제 주인을 깍듯이 모셨을 터,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운람사에서 괴촌 내려오는 길섶엔 금방이라도 기어오를 듯 개폼을
잡은 경운기가 잡초에 묻혀 세월을 죽이고 있기도 하다.
고물장수가 슬며시 실어가도 누구하나 시비 걸 처지도 안될 만큼
널브러져 있는 게 경운기이다.
피폐일로에 있는 농촌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고향을 떠나기 전이니, 30여 년 전 일이다.
집 앞 신작로 건너 성태네 무논을 갈러 경운기가 등장하였다.
성태네 먼 친척이 몰고 온 그 일제 경운기는 앙증맞다하리만큼
조그마한 게 마치 발바리 개와 같았다.
축소를 지향하는 왜놈이라더니, 과연 그러하였다.
동네사람이 하얗게 모였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화등잔만큼이나 큰 눈을 훤하게 밝히고 밤이
이슥토록 통통 거리며 논을 갈아대는 광경을 경이롭게 지켜봤다.
36년 설움이야 사무치지만, 쇠 쭈물거리는 솜씨로야 역시 왜놈이니
일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터였다.
공부에 공부를 거듭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우리가 허구한 날 홍어 X이냐.
그와 같은 시기에 드디어 우리의 국산 경운기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근근이 밥이나 굶지 않고 살 때였으므로 집집마다 소나 두어 마리
키우면 장땡이었지, 거개의 사람들은 그 비싸고 귀한 경운기를 살
엄두는 내지 못하였다.
어느 마을이나 앞서가는 사람은 있는 법이다.
일찍이 뜻한 바 있어 그 경운기를 산 사람이 있었다.
석탑리(속칭 걸촌)에 사는 최XX란 젊은이가 바로 그 사람이다.
무릇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 된다지 않았던가.
기술의 축적이 없으니 일제를 베꼈으리라.
그 어설픈 경운기는 엔진코를 눌린 체 기역자 꺾인 장비로 바쁘게
쇠바퀴를 돌려 쉭쉭 시동을 걸어야 했다.
상사점이 잘 맞지 않은 탓인지, 가끔 “펑”하는 굉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를 울컥 내품는 통에, 우리는 언제쯤 또 그 찜빠지랄을
할 것인 지 내달리는 경운기에 앞서거니 옆서거니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며 헐떡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마치 시장 한 구석에서 명맥을 잇고 있는 뻥튀기기의
그 “펑”을 기다리는 조바심과도 같았다.
그렇듯 어설프긴 하였으나 지금이나 예나 경운기의 용도는 실로
다양하였다.
일찍이 작심한 듯 그 젊은이는 이웃마을을 끊임없이 돌며 그
다양한 재주를 밑천삼아 척척 돈을 벌어들였다.
농번기 때면 먼저 해달라고 줄을 설 지경이었으니, 쎄 빠지게 농사
짓는 것 보다 수입이 짭짤하였을 것이다.
마치 쟁기를 끌어 밭을 갈아주던 강원도 산골 밭갈애비를 닮은지도
몰랐다.
힘에 겨워 종종걸음이지, 지칠 줄 모르는 경운기라 할 일은
많았다.
첫째는 논밭 갈기일 것이다.
소귀에 경 읽기라, “이랴 이랴 쩟쪄”에 목쉬어가며 뙤약볕에 씨름
해야 하는 그 벅찬 일을, 밤을 낮 삼아 품삯 몇 푼으로 해결해
주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둘째는 타작이다.
보리타작을 해 본 사람은 안다.
무릇 낱알이란 바짝 말라 비틀어져야 잘 털리는 법이다.
유월의 땡볕, 땡칠이도 혀를 늘어뜨린 체 헐떡거리는 그 한 낮.
아버지는 지게 꼬랭이에 보릿단을 차례로 묶어 마당 바위에 패대기
치고 있었다.
모든 건 지나간다고 하였는가.
바리바리 실어 쌓은 그 보리 낟가리는 석양과 함께 기어이 끝장은
났지만, 아버지는 막걸리 몇 잔에 곤죽이 되어 쓸어 지셨다.
그런 타작을 순식간에 해치운 게 그 경운기이다.
사람 나고 돈 났지, 그까짓 겉보리 몇 말 품삯이 아까울 리
없었다.
셋째는 장짐 운반이다.
고추 근이나 쌀말이라도 팔아야 곰삭은 멸치젖이나 비린 생선마리나
마 어른 상에 올릴 수 있는 터. 이고 지고 비포장 시오리 재를
넘기엔 그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아니하였다.
그 무거운 장짐을 그저 품삯 몇 닢으로 마늘 전에, 싸전에 싸게
싸게 부렸다.
아는 이웃, 그것도 과수댁네 것은 거저임이 분명하였다.
나라도 그러하였을 것이므로.
그렇게 돈을 벌었을 걸촌의 최XX 형은 그 처갓집인 사곡으로
이사가 대농(大農)이 되었다 한다.
지난겨울 녘 우리 동네 이장과 함께 한 광암상회 박스 맥주 값을
도맡아 낸 걸로 봐서 그 말은 틀림이 없으렷다.
그로부터 팔자에도 없는 수전(水戰)을 겪은 지 삼십하고도 육년
후인 작년 이맘 때, 아버지의 고단한 삶이 올올이 박힌 이 고향에
우리 부부는 돌아왔다.
내 손으로 키운 고추를 맛보고 싶었고, 콩으로는 메주를 쑤고
싶었다.
이웃 어른의 경운기로 고추 약을 쳤다.
이천 팔백포기 고추 밭 한 번에 삼만 원, 또 한 번 오만 원.
돈도 돈이지만 어렵고 미안하여 두어 차례 약을 늦췄다.
망했다. 싸~악.
산 너머는 처갓집이다.
광주리 장사, 소주상자 여다 나르기에 다리관절이 닳으신 장모님이
홀로 계신다.
어기적 어기적 기다시피 논 몇 떼기, 밭 한 마지기 농사를 짓는데
경운기가 없다.
자식이야 있지만 읍에 살아 반 농사꾼, 이웃 기계를 빌리는 게
쉽지 않은 노릇이다.
여러 해 동안 이 모양을 보아온 우리 부부의 가슴엔 돌이 얹혔다.
귀농정책에 힘입어 경운기 한 대를 어렵사리 가지게 된 게 올
봄이다.
야호 ! ~~ 이야, 얼쑤 좋구나.
DT10D(E) / 디젤엔진 / 정격출력 10마력 / 570만 원 중
400만 원 보조혜택.
기름만 넣어주면 몇날 며칠 끝장을 볼 놈,
처가동네 이웃어른을 끊임없이 찧고 빻아 기어이 절단을 낸 놈,
그러나 길들이면 충성스런 애마임엔 틀림없는 놈.
차고를 지었다.
차도 차지만, 우리의 새 경운기가 고단할 것 같았다.
여름엔 뜨겁고 겨울엔 응결수가 생기는 양철지붕을 샌드위치패널
50T로 바꿨다.
지붕교체에만 거금 90만 원이 더 들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떠 올리며.
마늘을 캐고 난 처갓집 무논써레에 우리 새 경운기가 본때를
보였다.
모든 장비는 물이 금물이다.
몇날 며칠을 무논에다 장마에 방치된 우리 경운기를 보는 심정은
쓰라렸다.
그러나 손위 처남이 하는 일, 검다 희다 말할 처지는 아니다.
그깟 기계보다는 형님 아우 오빠 동생이 좋고, 장모 사위가
우선이다.
우리 경운기가 지붕 바꾼 새 차고로 돌아온 날,
처남 차 꽁무니가 사라지기가 무섭게 퐁퐁 듬뿍 뿌린 물에 깨끗이
목욕시키고, 온갖 기름을 쳐 발라 번들번들 윤을 냈다.
새 찰 때야 누구나 때 빼고 광내는 건 당연하다지만, 그것이
경운기일 땐 얘기가 달라진다.
녹슬고 먼지 쌓인 걸 용납할 수 있어야 진정한 농군이 될 터인데
아직은 초보 농군,
이웃들은 이런 나를 어떤 시각으로 볼 지 걱정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을 떠올린다.
올해는 천 하고도 삼백포기 고추를 심었다.
작년의 반에 불과하지만, 처남과 힘을 합쳐 방재를 열심히 한 탓에
고추가 주렁주렁 달렸다.
먹고도 남음이 있어 마음 내키는 곳곳마다 나눠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논을 헤집고 돌아와 목욕재계한 우리 경운기는 시원한 차고에서
허구한 날 놀고자빠졌다.
마치 밥 잘 먹고 잘 싸고 자빠져 자는 우리 집 개 팔자다.
꼴랑 열흘에 한 번씩 우리 집과 처갓집 약을 치는 일도 일이라면
할 말은 없다.
차도 개도 주인을 잘 만나야 팔자가 펴는 법이다.
안녕하세요? 김상영선생님! 오실 때 마다 따뜻한 고향마을 이야기를 들려 주셔서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정겹고 따뜻한 의성현장의 추억 속으로 그냥 달려가고 싶지만 참 쉽지 않네요.
농촌생활에서 경운기도 필요하지만 관리기도 필요 할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 마을에는 딱 한 대의 경운기가 남아 있는데 의성과 달리 4륜구동으로 개조한 경운기가 많았던 것이 단양지역 경운기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언제 소구리하우스 방문 하시면 왜 4륜구동 경운기가 필요 했던 것인지 금방 이해가 되실 것 같습니다.
올 한해 고추농사 잘 지으시고 정이 넘치는 사모님과 건강하고 즐거운 추억 많이많이 만드시길 응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