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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창고에서 바라본 하리하우스 계단 부근과 1층 전경

2007년 4월 11일 하리하우스 풍경 입니다. 누군가 이 싯점에서 전쟁으로 폐허가된 도시의 주택을 필요로하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단편영화를 촬영하기 딱 맞는 하리하우스 풍경입니다. 실지 이런 풍경을 돈주고 만들려면 쉬운일은 아니랍니다. 몇백은 족히 들고 아니면 그 이상도 들어 가는 전쟁터에서 폐허가된 건축물 풍경 입니다. 로우앵글로 부서진 콘크리트 계단을 앞에두고 콘크리트방수 하기 위해서 합판을 붙여놓은 하리하우스를 촬영한 사진 입니다. 여기서 계단 잔해가 없으면 밋밋한 풍경이 되겠지만 부서진 콘크리트 사이로 녹슨 철근이 나와 있어 전쟁의 파괴력을 좀 더 리얼하게 보여 줄수 있는 풍경이 되었지요. 근데, 이 계단을 아래로 떨어뜨리기 위해서 네사람이 무지 고생했습니다.

이렇듯 사물 하나가 있고 없고 따라서 그 풍경은 하늘과 땅 만큼 변화 합니다. 사람 살이도 마찬가지 겠지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금방 표시가 난다는 의미와 이 사진에서의 부서진 철근콘크리트 계단과는 일맥 상통하는 면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연관시켜 바라 볼 수 있으리라 생각 됩니다. 누군가 이런 풍경이 필요하면 2007년 4월 14일 까지는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 됩니다. 그 이후에는 또 다른 풍경이 하리하우스를 꾸미고 있겠지요. 아주 깨끗하고 산 뜻한 하리하우스를 말입니다.


소구리 하우스에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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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2006년 11월 11일 하리하우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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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오월 오일 어린이날 하리하우스 리모델링 현장 방문한 건축주와 친척

 리모델링 중인 하리하우스에 건축주 고모님과 셋째오빠 건축주 옥이와 지윤이와 지승이가 방문했다. 지윤이 아빠는 시공현장시찰 하느라 바빠서 이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하리하우스 어딘가에 서 있다.^^ 그 날이 어린이날이었던 것을 오늘 이 사진을 보면서 알았다. 쿠~ 어린이날도 모르고 하리하우스 리모델링 현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옛날 어린이날의 추억들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어릴 때 집을 떠나 서울로 유학 간 덕분에 고생 많이 했다. 집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그 시대 누구나 그랬듯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울생활에 힘들어 하던 어린 꼬마의 가슴은 지금 생각해 봐도 애 뜻하고 아프다. 그래도 다섯 명의 솔고개마을 출신 촌놈들은 모두 건강하게 그 세월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도 서있고 다른 곳에서도 서 있다. 그 다섯  명의 막내가 하리하우스 건축주 옥이다. 지금은 두 자녀의 어머니로 거울 앞에선 국화꽃 같은 누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옥이는 옥이처럼 하리하우스에 서있다. 언제나 듬직하고 여유로운 가슴을 가진 사내 셋째오빠와 함께.... 그 앞에는 막내 오빠가 서 있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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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2007년 오월의 마지막 날에  리모델링 중인 하리하우스 전경

 하리하우스는 지금 새롭게 21세기 첨단 건축자재와 공법으로 리모델링 중에 있다. 하리하우스가 새롭게 변화해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우리시대의 목수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삶에 현장에서 그들의 기술과 그들의 꿈과 그들의 사랑을 홈쳐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쩌면 그 것이 나와 나의 이웃과 좋은 친구들에게 하리하우스가 진정으로 들려주고 보여주고 싶어 하는 선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적어도 아직은 우리들의 착한 이웃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아직 썩지 않는 사랑의 힘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우리는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속에  즐거운 하리하우스 리모델링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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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지윤이네 하리 하우스 본채 뒷면 전경

1973년... 새마을 운동이 절정에 이르고 수출 100억불을 외치던 시절에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리에 양조장 건물이 신축 되었습니다. 그 시절 고향 떠난 누나와 형아들이 서울 구로공단과 울산공단에서 티셔츠도 만들고 유조선도 만들면서 오로지 고향땅 부모님과 조국 근대화의 희망찬 미래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모두가 열심히 일하던 시대 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박정희 군사독재 정부의 장기집권 시도가 진행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절대 자유와 인권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앞 세운 유신헌법이라는 정치적 틀속에서 독재에 짖눌리고 살았던 암울한 시대가 1970년대 입니다.

                         Hari Hous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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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축물이 2006년에 비교적 온전히 하리마을에 흘러간 세월만큼의 연륜과 멋을 뽐내며 실개천이 옆으로 다정 다감한 건축미를 자랑하며 마을의 중심축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텃밭 끝자락에 남쪽을 향해 직사각형 2층 건축물은 언듯 봐도 1970년대 건축물이 보여주는 낯익은 감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 일대에도 산비탈을 따라 벽돌로 쌓고 미장으로 마감한 주택들이 들려주는 서민들의 주거건축 양식을 볼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재개발의 광풍에 정감어린 달동네의 붉은색 기와지붕과 스레이트 지붕으로 연결된 지붕 마루들이 보여주는 풍경과 그 안으로 이리저리 연결된 비탈길 골목길의 정경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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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도 정말 다행이도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는 1970년대 후반을 살아갔던 사람들이 느꼈던 집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깃든 가슴과 집을 바라보는 합리적인 건축관을 간직한 그 시대의 건축물이 비교적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당시 경제적 상황과 건축기술과 건축자재의 낙후성으로 벽돌과 철근콘크리트로 조합된 단순한 외양과 내부 구조로된 평범한 건축이지만 정말 튼튼하기 그지 없는 토치카처럼 단단한 구조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1층에서 2층 지붕면을 떠받치는 벽체는 눈 짐작으로 재어봐도 30CM가 넘을 것 같았습니다. 와~! 요새구나! 프랑스가 독일 침공에 대비해서 구축 했다던 그 벙커도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 벽체보다는 단단하지 않겠단 생각이 스쳐 지나갔으면 말 다했지요? 그래서인지 30년이 넘은 단순한 조석식 벽돌 건축물에 균열(crack)을 발견 할 수 없었습니다. 건물 외관만 잘 관리해 주면 앞으로도 100년 아니 그 이후의 또 한 세기를 사용해도 별 문제가 없을것 같은 집이 하리 하우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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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윤이네 하리 하우스는 1층은 막걸리 만드는 작업장이고 2층은 살림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요즘 건축물로 말하자면 1970년대 봉재산업의 메카였던  구로공단자리에 우후죽순 들어서는 공장형 오피스 빌딩과 맥을 같이하는 스타일 입니다. 다른 특별한 설명으로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의 건축적 발견을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2층 살림집 후면에 있는 창문 만으로 이야기 합니다. 2층에는 용도에 따라 구획된 공간에 하나의 창문이 달려 있습니다. 모두 5개의 창문이 있는데 그 크기가 모두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왼쪽 작은 창문이 있는 공간은 화장실과 욕실 입니다. 당연히 누가 볼까봐 창문을 작게 만들었고 두번째 제일 큰 창문은 안방 창문 입니다. 사람이 주로 거주하는 메인 공간의 창문을 크게 만들어 놓아 햋살과 창밖 전망을 고려한 크기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세번재는 주방 창문 입니다. 네번째 건너방 정도의 용도로 사용되던 공간의 창문이고 마지막이 요즘으로 치자면 다용도실 용도의 공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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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에 대한 생각으로 각 창호의 크기가 용도별로 정해지고, 열 손실을 최소화 하기위한 생각으로 전체적으로 창문의 크기가 작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것이 그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건축을 바라보는 생할 건축이고 삶의 지혜가 묻어나는 건축물로  현실과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나타나는 역사성을 간직한 건축물이 하리 하우스 입니다. 지금 처럼 돈 많이 들여서 건축설계를 맡겨서 집을 짓는 일명 스타 건축가들이 만들어 내는 관념적 건축과는 구별되는 우리 시대의 건축물이라 이야기 해도 누가 아무도 뭐라고 그러지 아니 하겠지요.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창문이 있는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는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수리해서 살기로 했답니다. 참으로 그 집 주인은 역사와 미래에 대한 현명한 미적 감각과 건축적 안목을 가진 멋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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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에 대한 자가보수 이야기를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 홈페이지 집수리 카테고리에 올릴 생각 입니다. 오늘은 지윤이네 하리 하우스가 갖는 건축적 의미와 하리하우스의 역사적 상징성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집수리 이야기를 끝내야 겠습니다. 한 마디 더하고 끝내야 겠습니다. 집은 사람이 살면서 수리하며 가꾸는 재미가 있어야 제대로 된 집입니다. 그 집을 수리 하면서 세대간의 벽을 허물고 가족간에 사랑과 신뢰와 믿음이 쌓일때 인간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진짜 좋은 집으로 자자손손 보존되며 이야기 될 수 있겠지요. 할아버지의 손길과 추억이 깃든 집, 아버지의 땀과 사랑이 깃든집, 엄마의 정성스런 손길이 깃든 집, 그런 집과 몇년 후에 오를 집값을 바라보고 사는 집... 어떤 집이 사랑스럽고 정감있는 좋은 집이란 것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집에 대하여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가치는 있을 듯 합니다.

지윤이네 하리하우스 홈^^